연차 신청서 던져놓고 안 나오면? — 대법원이 정한 기준
"연차 냈으니 안 나옵니다" — 이 말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
운수업 현장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승무원이 관리자 책상에 연차신청서를 놓고 나가고, 지정한 날에 출근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결근 처리하면 "연차를 안 받아줬다"는 항의가 돌아옵니다.
여기엔 양쪽 모두의 오해가 섞여 있습니다. 승무원은 "신청하면 자동으로 성립한다"고 생각하고, 회사는 "바쁘면 거부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둘 다 아니라고 말합니다.
먼저, 연차는 '신청'이 아니라 '시기지정'입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은 사용자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주도록 정하면서, 그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이 구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연차휴가권은 법정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성립하지만, 근로자가 시기를 지정해 청구하면 그 권리는 사용자의 적법한 시기변경권 행사를 해제조건으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00.11.28. 선고 99도317).
승무원의 오해: "신청했으니 끝"
2025년 대법원 판결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시내버스 회사에서 승무원이 휴가를 신청했고, 회사는 단체협약상 '휴가 사용 3일 전 신청' 규정을 근거로 이를 거부한 뒤 출근하지 않은 것을 무단결근 처리했습니다.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했지만, 1·2심과 대법원 모두 회사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2025.7.17. 선고 2021도11886).
대법원은 시기변경권의 정당성 판단 기준으로 업무의 내용과 성격, 근무인원과 업무량, 대체인력 확보의 필요성, 청구 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처럼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에서는 대체인력 확보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단체협약에 합리적인 신청 기한이 정해져 있는데 불가피한 사유 없이 이를 어기고 청구한 경우, 회사는 적법하게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오해: "바쁘면 거부하면 된다"
반대 방향의 판결도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인가받은 버스 노선이 결행되면 과징금이 부과되고 준공영제 노선의 경우 운송원가의 배수로 제재를 받는다는 회사 주장에 대해,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통상 예견 가능한 것이라며 시기변경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6.8.19. 선고 2015구합73392).
하급심에서는 남은 근로자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늘어난다는 일반적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판결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절차입니다. 회사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단순히 거부만 하고 연차 사용을 방해했다면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위반이 성립할 수 있고, 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입니다.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언제로 변경한다"고 통보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 구분 | 법적 평가 |
|---|---|
| "그날은 안 됩니다"만 통보 | 시기변경권 행사로 보기 어려움 — 위반 소지 |
| "○일로 변경합니다" 통보 + 사유 기록 | 시기변경권 행사 — 요건 충족 시 적법 |
| 아무 대응 없이 결근 처리 | 휴가 사용 방해로 평가될 위험 |
이제부터는 이렇게 — 실무 정립 순서
- 1단계 — 현재 규정을 먼저 확인한다.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 연차 신청 기한·절차가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부터 대조합니다. 규정이 있는데 지켜지지 않은 것인지, 규정 자체가 없는 것인지에 따라 대응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2단계 — 신청 기한에 합리적 근거를 남긴다. 대법원이 인정한 건 '기한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기한이 대체인력 확보에 필요하다는 업종 특성상의 합리성입니다. 예비 승무 인력 규모, 배차 확정 시점 같은 근거를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 3단계 — 거부가 아니라 '변경'으로 통보한다. 불승인 사유만 적지 말고 변경된 사용 가능일을 함께 제시합니다. "그날은 안 된다"와 "○일로 변경한다"는 법적으로 전혀 다른 행위입니다.
- 4단계 — 판단 근거를 그때그때 기록한다. 그날의 배차 상황, 대체 가용 인력, 이미 승인된 휴가 건수를 남깁니다. 시기변경권의 정당성은 사후에 서류로 다투어지므로, 기록이 없으면 판단이 옳았어도 입증할 수 없습니다.
- 5단계 — 승인 결과를 문서로 회신한다. 구두 통보만으로 끝내면 "받아주지 않았다"는 주장과 맞설 근거가 남지 않습니다. 승인이든 변경이든 같은 형식으로 회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이 글은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대법원 2000.11.28. 선고 99도317 판결, 대법원 2025.7.17. 선고 2021도11886 판결, 서울행정법원 2016.8.19. 선고 2015구합73392 판결을 근거로 작성했습니다. 개별 사업장의 취업규칙·단체협약 내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안은 관할 노동청 또는 공인노무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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