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 대기시간, 근로인가 휴식인가 — 대법원의 5가지 기준

운행을 마치고 다음 운행까지 기다리는 시간. 승무원은 근로시간이라 하고, 회사는 휴게시간이라 합니다. 법원은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업종만 보고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답이었습니다.

대기시간 휴게시간

법 조문은 이미 양쪽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두 개의 조문으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얼핏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기준을 앞뒤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제50조 제3항

근로시간을 산정할 때,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제54조 제2항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두 조문을 겹치면 판단 기준은 하나로 모입니다. 지휘·감독 아래 있었는가, 아니면 자유롭게 쓸 수 있었는가. 이름이 무엇이든, 실질이 어느 쪽이었는지가 전부입니다.

2021년, 대법원이 버스기사 사건에서 내린 판단

서울 시내버스 기사들이 1회 운행을 마친 뒤 다음 운행까지의 대기시간도 근로시간이라며 임금을 청구했습니다. 1심과 2심은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대법원 2021.8.12. 선고 2019다266485).

근로계약에서 정한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속하는지 휴게시간에 속하는지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의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며,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9다266485 판시 취지

대법원이 근거로 든 사정은 구체적이었습니다. 노사가 임금협정에서 1일 근로시간을 기본 8시간에 연장 1시간을 더한 9시간으로 합의했는데, 이는 평균 운행시간 8시간 외에 대기시간 중 일부가 근로시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반영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기사들이 대기 중 식사를 하거나 별도 공간에서 휴식을 취했고, 다음 운행 출발시각이 배차표에 미리 정해져 있어 휴식으로 활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 오해하기 쉬운 지점
대법원은 "대기시간 전부가 근로시간은 아니다"라고 했지, "전부 휴게시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기사들이 대기 중 청소·검차·세차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결론은 파기환송이었고, 다시 따져보라는 취지였습니다.

법원이 실제로 들여다보는 다섯 가지

같은 판결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요소입니다. 현장에서 점검표로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01  계약과 규정
근로계약의 내용,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 그 시간이 어떻게 규정돼 있는가
02  실제 업무 방식
그 시간에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 청소·점검·세차 같은 업무가 끼어 있는가
03  간섭과 감독
쉬는 동안 사용자의 지시·호출·확인이 있었는가
04  휴게 장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실제로 갖춰져 있는가
05  휴식의 실질
예측 가능한 시간이었는가, 아니면 언제 불릴지 모른 채 대기했는가

같은 대기시간이 갈리는 이유

이 다섯 가지를 놓고 보면, 왜 똑같아 보이는 대기시간이 사업장마다 다르게 판단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휴게시간에 가까운 상황 근로시간에 가까운 상황
다음 출발시각이 배차표에 확정돼 있다 언제 호출될지 모른 채 대기한다
별도 휴게 공간에서 식사·휴식이 가능하다 차량 안이나 정류소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시간에 지시받는 업무가 없다 청소·점검·세차가 사실상 포함돼 있다
노사 합의에 그 시간의 성격이 반영돼 있다 아무 규정 없이 관행으로만 운영된다

※ 어느 한 줄에 해당한다고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라, 위 요소들을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대법원이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라고 한 이유입니다.

현장에서 정리해 둬야 할 것

  1. 이름이 아니라 실질로 기록한다. 서류에 '휴게시간'이라 적어두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가 판단 기준입니다.
  2. 업무가 끼어 있으면 분리한다. 청소나 점검을 대기시간 안에서 하도록 두면 그 부분은 근로시간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업무라면 별도 시간으로 잡는 편이 명확합니다.
  3. 휴게 공간의 존재를 확인한다.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든 요소입니다. 실제로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는 문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4. 노사 합의에 그 시간의 성격을 반영한다. 2021년 판결에서 대법원이 회사에 유리하게 본 첫 번째 근거가 임금협정 내용이었습니다. 합의 과정에서 무엇을 고려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5. 배차표를 사전에 확정한다. 출발시각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이 "휴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예측 가능성 자체가 판단 요소입니다.
오늘의 핵심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인지 휴게시간인지는 업종이 정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자유가 있었는지, 지휘·감독이 있었는지를 사안마다 따져 정합니다.

이 글은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 제54조 제2항, 대법원 2006.11.23. 선고 2006다41990 판결, 대법원 2021.8.12. 선고 2019다266485 판결을 근거로 작성했습니다. 개별 사업장의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내용과 실제 운영 방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안은 관할 노동청 또는 공인노무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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